앞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을 여러개 다루면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지브리 스튜디오는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연결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습니다. 오늘 리뷰할 지브리 영화 《고양이의 보은》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 소녀의 성장 이야기를, '고양이 세계'라는 독특한 판타지 공간과 함께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도쿄라는 현대 도시를 출발점으로 하여 비현실적 세계로 넘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극명한 차이도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고양이의 보은》에서 도쿄가 어떻게 판타지 세계과 연결되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공간적 해석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합니다.
1. 도시로서의 도쿄 : 일상의 상징과 내면의 반영
《고양이의 보은》 의 첫 장면은 여주인공 '하루'가 도쿄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지하철과 복잡한 교차로, 붐비는 등교길, 학교 운동장과 교실 등은 일본 도심의 현실적인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도쿄는 일본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 중 하나로 질서와 규칙 그리고 속도감이 있는 생활이 일상화된 장소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루'의 일상은 매우 평범하고, 때로는 단조로움과 피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침엔 늦잠을 자고 허둥지둥 등교하며, 친구들과는 어울리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감정을 느끼는 '하루'의 모습은 도시 속에 묻혀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죠. 도시 공간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분주하고 기능적인 장소처럼 보이지만, '하루'갸 느끼는 혼란, 무기력,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과 함께 무래색의 배경 속에서 시각적으로 표현됩니다. 이렇듯 도쿄는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 아닌,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를 대변하는 장치이며, 그 내면이 흔들릴수록 도시 공간도 이질적 요소를 보여주게 됩니다. 어쩌면 이 시점부터 지브리는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하루'가 고양이를 구출해내는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작점이며, 말하는 고양이의 등장은 이 도시가 단순한 현실 세계가 아님을 보여주게 됩니다.
2. 판타지 세계로의 진입 : 도쿄를 벗어나는 여정의 상징성
《고양이의 보은》 은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쿄라는 도시 안에서 점진적으로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끔 전개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하루'가 고양이 왕국으로 초대되는 과정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전이(轉移)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때 도시의 공간들은 점점 낯설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바뀌며, 시각적으로도 색채와 구도가 전환이 됩니다. 지브리는 이 과정을 통해 도쿄 자체가 하나의 관문, 즉 '포털(portal)'로 작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고양이 남작의 사무실이 위치한 공간은 매우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외관상 도쿄 시내 어딘가에 위치한 오래된 골동품 가게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죠. 저는 고양이 남작의 존재, 이상한 시계, 고양이 인형들이 진열된 공간들 전부 판타지 세계의 입구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도쿄의 일상을 벗어나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환상의 여정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인공은 고양이 세계로 '끌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무의식과 내면의 목소리에 의해 '이동'합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판타지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의 숨어 있는 상상력과 개인의 변화 가능성을 그리는 것이 지브리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양이 왕국으로 가는 길목도 현실 공간의 왜곡으로 묘사됩니다. 계단이 기묘하게 늘어나기도 하고, 시간 감각이 상실 되는 등으로 말이죠.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들은 마치 꿈 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유도하며,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인식하도록 유도됩니다.
3. 회귀와 성찰: 도시와 판타지의 경계 허물기
영화 후반부, 주인공 '하루'는 고양이 왕국에서 벗어나 다시 도쿄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죠. 고양이의 도움을 받으며 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은 그녀는 이젠 전과 달리 능동적이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 변화를 단순히 개인의 내면 성장으로만 그리지 않고, 도쿄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시선의 전환으로 이어지게 연출됩니다.
지브리는 판타지 세계를 단순히 허구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과의 연관성을 통해 도쿄와 같은 현실 공간 안에서도 얼마든지 상상력과 변화의 계기가 숨어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경험한 모험은 끝났지만, 그 여정은 그녀가 사는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길, 같은 학교,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그녀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며 도쿄라는 공간 역시 다른 의미를 지닌 장소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지브리 특유의 서사 구조인 '회귀형 환상(fantasy of return)'의 전형적인 구성입니다. 즉, 일상에서 출발하여 판타지를 경험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되 이전과는 다른 시선과 태도를 지닌 인물로 성장하는 이야기죠.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이 회귀 구조를 도시 공간과 연결시킴으로써, 도쿄 역시 환상을 담아낼 수 있는 '열인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번에 다뤄본 《고양이의 보은》 속 지브리의 판타지 세계관을 통해 도쿄라는 현실 공간을 새롭게 바라봤습니다. 단순한 애니메이션 그 이상으로,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에도 환상과 전환, 그리고 내면의 성장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도 어쩌면 '하루'처럼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고양이의 보은》을 다시 한 번 감상하시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