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홍콩 영화인 《중경삼림》은 오늘날에도 영화 팬들이 사랑하는 명작입니다.
이 영화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4인 4색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은 내용으로, 톡특한 촬영기법과 함께 인물들의 감정을 함축한 "명대사"들로 유명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이 영화 속 주요 명대사를 중심으로, 그 안에 담겨있는 상징과 감정선 그리고 전체 서사를 한번 풀어내볼까 합니다.
1. "상징" : 사랑의 유통기한
중경삼림의 첫 번째 주인공은 경찰 223인 '금성무'와 마약밀매상인인 '임청하'입니다. 만우절인 4월 1일, 거짓말처럼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경찰 223'은 그녀의 말을 농담이라 믿고 싶어하죠. 그는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며,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하나씩 사 모으며 그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223'은 모든 물건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에 절망하며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칩니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라고요.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에서부터 시작되어, 사랑의 유통기한까지로 확장시키는 면에서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금성무'가 5월 1일까지의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같이 사는 장면은, 한 존재의 부재를 부정하는 방식이자 간절함과 절박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유통기한' 자체는 한정된 시간을 보여주는 "유한성" 대한 상징이 아닐까합니다. 또한, 영화 전반적으로 대비되는 노란조명, 푸른 필터는 감정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왕가위 감독의 연출법처럼 일상의 사물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죠.
2. "감정" : 우린 얼마나 가까운걸까?"
중경삼림의 두 번째 주인공은 '경찰 663' 역을 맡은 양조위와, 그를 짝사랑하는 알바생 '왕페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팝성인 'California dreaming' 노래가 울려퍼지는 음식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이곳의 단골 손님인 '경찰 663'은 승무원인 여자친구를 위해 매일 같은 종류의 샐러드를 주문해가죠. 어느날 음식점 사장의 권유로 샐러드와 함께 새로운 선택지인 '피쉬 앤 칩스'를 사가게 되는데요, 뜻밖에도 여자친구는 새로운 메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극 중 양조위의 나레이션 중 "우린 얼마나 가까운걸까?"라는 그의 대사는 감정을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여자친구와 이별을 겪으며, 고요한 일상 속에서 상실감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집 안의 물건들이 슬퍼해"라는 양조위의 대사는 현대인의 외로움, 인간 관계 속 미묘한 거리감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왕페이가 양조위의 집을 몰래 청소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겹쳐지며 감정선도 부각되죠. 왕가위 감독은 "행동"과 그 속에 담긴 상징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며, 관객 스스로가 각자의 기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습니다.
3. "서사" : 아무 곳이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결국 '경찰663'에게 들킨 페이, 그제야 자신의 주위에 일어났던 변화는 전부 페이 덕분임을 깨닫게 되죠. 그는 그녀에게 '내일 저녁 8시에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라며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다음날 그는 '캘리포니아'라는 펍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가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1년 후 그의 눈 앞에 나타난 페이는, "어디에 가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영화 전체 서사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리고 "아무 곳이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라는 그의 대사는, 각 인물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서사를 입히게 되죠. 또한 이 대사는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연', '인연', '시간'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의 대사들은 단순한 대화가 아닌 각 인물의 감정, 삶을 대하는 태도들을 담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사물들, 침묵 속의 감정, 열린 결말 등은 관객 스스로로 하여금 영화를 해석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중경삼림》 속 명대사들을 통해 사랑과 서사, 감정을 동시에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